모든 기부회원님을 다 기억하긴 어렵지만, 한 번이라도 뵌 분들은 마음 속에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어요. 여러 번 만나 뵈었거나 특별한 순간을 함께한 분들은 더더욱 잊을 수 없죠.

그중에서도 20년 넘게 꾸준히 기부를 이어오고 계신 고연차 기부회원님들께는 존경심이 절로 생깁니다. 저보다 먼저 아름다운재단과 인연을 시작하신 경우도 있어요. 그분들의 굳은 믿음과 든든한 지지는 글로 다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크답니다.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8월의 어느 날, 저의 기부자 소통 선배이신 박혜윤 전 매니저와 함께 25년차 기부회원 김선영님을 만났습니다. 이제는 친구 같은 이 느낌! 선영 기부회원님을 소개합니다.

첫 월급, 첫 기부

2000년 8월, 첫 직장에 입사했어요. 아름다운재단이 생긴 게 8월 20일이니까 딱 그때쯤이었네요. 고향은 강릉인데 서울에서 스스로 돈을 벌게 되다니 너무 신기하고 감동적이었어요.

당시에 아름다운재단의 1% 나눔이라는 개념이 매체에 자주 소개되었거든요. 기부라는 건 돈이 많은 사람이나 하는 거, 김밥 할머니처럼 평생 모은 돈을 쾌척하는 그런 것으로 여겼었는데 내가 가진 것의 1%를 나눌 수 있다는 시각이 참 신선했어요. 첫 직장에 들어간 직후 ‘나도 이제 돈 번다’, ‘나도 이제 이런 거 할 수 있다’는 설렘으로 시작했습니다. 저에게도 1%를 나눌 기회가 온 것 같았죠.

2000년 당시 1%나눔 포스터

당시 1%나눔 포스터

첫 직장에 입사했을 당시에 퇴근하고 영어학원을 다녔어요. 시작한 시기가 같아서 그런지 저는 제 첫 기부를 떠올리면 그 영어학원 다니던 때 생각이 나더라구요. 그게 25년 전이네요. 처음에는 퇴근 후 학원에 가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영어학원에 가는게 습관이 되니까 힘들지 않고 자동으로 가게 되더라고요. 그 과정을 지나보내고 나니 어쩌면 아름다운재단에 하는 정기기부도 자동이체의 힘인 것 같기도 해요. 꾸준함의 가치와 의미를 몸소 느꼈다고 해야 될까요? 자연스럽게 특별히 ‘내가 얼마씩 낸다’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됐죠.

유쾌한 미소의 김선영 기부회원님

유쾌한 미소가 귀여우시다

흔들려도 변하지 않는 것

30대 때 많이 아팠어요. 회사를 그만두고 자원봉사 활동을 하기도 하면서 새로운 리듬을 찾으려고 노력했죠. 그러면서 나 자신을 파고들기 보다는 바깥으로 에너지를 쓰고, 시선을 돌리고 나아가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법을 생각하게 된 듯해요. 이런 식으로 저한테 기부는 일상에서 뗄 수 없는 습관처럼 삶의 일부가 된 거죠.

나이가 들고, 또 벌이가 늘면서 새로운 기부처를 찾아 기부를 늘려갔는데, 삶에는 업다운이 있다보니 어느 때는 기부처를 줄이기도 했어요. 올해만 해도 두 군데를 줄였거든요. 그런데 신기하게 아름다운재단 기부는 중단한 적이 없어요. 저에게 의미 있는 시기에 인연을 맺은 첫 번째 기부처라서 그런지 첫 정이 있는 것 같아요. 활동하시는 모습을 꾸준히 지켜본만큼, 믿음이 가기도 하고요.

선한 인상과 부드러운 미소가 아름다운 김선영 기부회원

선한 인상과 부드러운 미소가 아름다운 김선영 기부회원

40대, 새로운 기준으로 사는 법

지금은 몬테소리 교육기관에서 일하고 있어요. 급여도 여건도 예전에 비해 넉넉하지 못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달라지는 것 같아요. 경제적인 부분이 아주 중요하게 느껴지지는 않게 되더라고요. 인생에서 1순위는 아니라고 할까요?

요즘은 몬테소리 국제자격증을 따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10년 후에는 전문 트레이너가 되어 아이들을 보다 체계적으로 가르치고, 그 과정에서 저도 꾸준히 배움을 얻는 게 목표에요. 꽤 긴 과정이라 늦은 나이에 도전하면서 조금 주저되는 때도 있었는데, “60도 되지 않은 나이인데 너무 젊다!” 면서 격려해 주시는 선배님들 덕분에 용기를 얻었어요.

기부를 망설이는 분들에게: “일단 시작하세요”

저는 사람들이 보통 인생의 가장 큰 결정 중 하나라고들 하는 결혼을 할 때도, 임신을 결정할 때도 너무 과도하게 계산하거나 망설이지 않았어요.

좋을 것 같아서, 안 해봤으니까, 어느 때는 무료해서(웃음)..

아이를 만나기 전엔 몰랐는데 지금은 ‘안 낳았으면 어쩔 뻔 했지?’라는 생각을 자주해요. 많이 배우고 아이 따라 걸어다니느라 덕분에 많이 건강해졌어요. 많이 고민하고 망설이다 걱정부터 앞섰다면 겪어보지 못했을지도 모르죠.

사실 오늘 인터뷰도 ‘만약 아름다운재단에서 인터뷰 요청 연락이 오면 무조건 한다고 해야지(웃음)’하며 있다가 연락을 받자마자 단번에 수락하고 나왔습니다. 재밌을 것 같아서요.

2019년, 아름다운재단 기부회원 소모임 '서촌드로잉' 포스터

지난 2019년, 재미있을 것 같아 시작했던 아름다운재단 기부회원 소모임 ‘서촌드로잉’ 포스터 아직도 집 벽에 붙어있다.

뭐든 일단 시작하면 그 다음에는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더라고요. 기부도 그렇죠. 생각이 많아지면 시작하기가 힘들어요. 처음엔 단순히 ‘나도 이제 돈 번다, 1%는 나눌 수 있지’하는 호기심으로 시작했던 게, 25년이 지나보니 삶의 일부가 되어 있던 것처럼요. 기부라는 건 그 자체로 ‘함께 더불어 사는’ 가장 쉬운 방법 중에 하나잖아요. 너무 망설일 필요 없는 것 같아요.

25주년을 맞은 아름다운재단에게

아름다운재단은 제 일상의 일부, 한 켠을 차지하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기부처예요. 그렇기 때문에 요란하지도, 거창하지도 않죠. 특별한 이벤트 같은 존재가 아닌 거예요. 가끔 보내주시는 수첩이나 보고서도 정말 좋아요. 기부를 처음 시작할 땐 그런 것들을 봐도 잘 몰랐지만 ‘투명하게 기부금을 사용하고, 운영하려고 애쓰신다는 건 느낄 수 있었어요. 그 믿음으로 여기까지 왔네요. 지금처럼만 해 주세요. 너무 요란하거나 너무 거창하지 않게. 잔잔하게 투명하게요.

글과 사진 : 두은정, 박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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