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엄을 맞아 온 지구가 떠들썩했던 2000년,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움직이겠노라 외치며 8월 아름다운재단이 등장했다. 국내 최초, 누가 봐도 “어? 좀 다르다?” 싶은 포스를 뿜으며.

나는 그로부터 4년이 지난 2월에 아름다운재단에 입사했다. ‘조금 특이하지만 똑똑한 조직, 진정성 있는 유쾌한 비영리 전문가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던 재단, 나는 이 재단에 어울리는 사람인가?’ 입사 초기 품었던 질문은 재단을 들여다 보게 했다.

일의 과정을 보고 알았다. 재단이 남다름 이유를. 경직된 문서보다 구성원들의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먼저였고, 회의보다 편안한 대화가 자연스러웠다. 처음엔 어디로 튈지 모르지만, 경청하고, 토론하고, 함께 톤을 맞춰가는 과정을 통과해 끝에는 아름다운재단다움을 만들어 냈다. 똑똑하고 진정성 있는 조직은 서로를 성장시키고, 함께하는 사람들이 중심에 있기에 가능함을 알았다.

당시 함께 일하던 동료들, 다들 무탈히 잘 사는지? 추억에 잠겨 스케치 이미지로 변환해보았다.

당시 함께 일하던 동료들, 다들 무탈히 잘 사는지? 추억에 잠겨 스케치 이미지로 변환해보았다.

과거와 현재, 업무환경의 변화

그때 업무 환경을 생각해보면 박물관 유물처럼 느껴진다. 큼지막한 CRT 모니터는 책상 공간의 반을 차지했고, 부팅만 5분 걸리는 컴퓨터는 종종 우리의 인내심을 시험했다. 시꺼먼 결재판은 사무실 내에서 끊임없이 이동 중이었고, 엑셀 파일 분석 한 번 돌릴 참이면 무한 로딩과 씨름해야 했다. 서류철은 단단히 묶지 않으면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몰랐고, 기안과 지출결의서는 반듯하게 인쇄해 자필 사인을 받아야 ‘진짜 서류’가 되었다.

당시 한 동료의 책상과 모니터, 쌓여있는 서류들

당시 한 동료의 책상과 모니터, 쌓여있는 서류들

2025년 업무환경은 ‘혁명적’으로 진화했다. 이제는 공간보다 연결과 신뢰가 중요하다. 아름다운재단은 업무 효율성 만큼 개인별 특성을 존중하여 근로장소&시간재량제를 운영하고 있다. 단, 원활한 소통을 위해 오전 10시~오후 4시 집중근로 시간은 지켜야 한다.

카페에서, 집에서, 심지어 해외에서도 일을 할 수 있다. 협업 툴 하나면 서로 다른 위치에서 팀원들이 동시에 같은 문서를 수정하고, AI로 회의록을 자동 정리하고, 전자결재로 의사결정을 즉시 전달한다. 예전엔 재단이 ‘일하는 곳’이었다면, 지금은 ‘일이 이뤄지는 집합체’로 연결성을 핵심 키워드로 삼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어디에선가 성실히 자기 몫을 다할 것이라는 신뢰를 바탕에 두고.

지금의 아름다운재단 2층 회의실 광경

지금의 2층 회의실 광경


시간을 관통해 만난다면

2005년의 간사와 2025년 매니저가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눈다면 어떨까?
(* 2023년, 구성원의 호칭을 간사에서 매니저로 변경했다.)

“요즘은 회의를 해도 회의실에 모이지 않는다면서요?”
“맞아요. 화상회의로 다 하죠. 회의록도 자동 생성되고요.”
“와, 저희는 회의실 예약하는 것도 전쟁이었어요. 회의 끝나고 회의록 정리하느라 퇴근 늦어지고.”
“요즘은 워라밸 중요해요. 그래서 서로의 시간을 존중하려 노력해요.”
“기부금영수증 출력하고 봉투에 넣고 풀칠했어요. 지금 생각해도 정말 정성 가득했죠.”
“그 마음이 있어서 지금 자동 발송이 신뢰 받는 거라고 생각해요. 기술은 바뀌어도 마음은 남잖아요.”
“맞아요. 그때나 지금이나 결국 사람을 향한 일이라 본질은 같다고 봐요.”

서로를 부러워하거나, 낡았다 하지 않고, 각자의 시대에 최선을 다한 ‘일의 가치’를 서로 인정하고 응원하는 대화가 오고 갈 것 같다. 시대는 달라도 ‘일하는 이유’는 같음을 느낄 것이기 때문이다.

잠시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다. 2050년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 회의실에 들어서자마자 벽면 전체가 인터랙티브 스크린으로 변하고, 참석자들의 언어가 자동 번역돼 각자의 언어로 들린다. 감정인식 AI는 오늘의 컨디션에 따라 배경조명을 조절해주고, 필요한 자료는 손짓만으로 공중에 띄워 확인할 수 있다. 팀원은 서울, 부산, 제주에 흩어져 있어도 마치 같은 공간에 있는 듯 자연스럽게 업무를 수행한다.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가상과 현실이 섞인 하이브리드 오피스에서 일이 이뤄지는 세상.

업무는 훨씬 유연하고 빠르지만, 동시에 지금보다 더 높은 윤리적 기준과 사회적 책임을 요구할 것이다. 기술은 발전만큼 우리가 일하는 목적도 더욱 뚜렷해야 한다.

변화 속에서도 지켜야 할 것

변화의 파도 속에서도 우리가 놓치지 않는 것은 일의 이유다. 왜 이 일을 하는지, 누구를 위해 하는지, 매번 묻고, 답하며 일하는 것. 세상에 당연함이 없음을 인지하고, 누구보다 먼저 문제를 인식하며 재단과 인연을 맺은 사람이라면 한 명이라도 삶의 변화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만남의 기회로 엮인 누군가의 일상과 삶을 허투루 보지 않는 것. 아름다운재단의 힘은 바로 여기에 있다.

기술은 모방될 수 있지만, 철학은 모방되지 않는다.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고, 서로를 존중하며, 사회에 긍정적 변화를 만드는 방향으로 일한다. 그건 어떤 업무환경에서도 변하지 않는 우리 재단만의 정체성이다.

시간은 변하고 도구는 진화하지만, 일의 가치는 우리가 어떻게 함께 하느냐에 달려있다. 25살이 된 아름다운재단의 지금, 우리는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고 미래를 준비하며 계속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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