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기는 누구에게나 어려운 시기다. 가보지 않았기에 더욱 막막한 인생길의 초입, 내딛는 한발 한발이 서툴고 그만큼 조심스럽다. 나는 어떤 사람이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답 없는 질문만 거센 바람으로 머릿속을 회오리친다. 이때를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부르는 것은 이런 이유일 것이다.

부모가 아니라 사회의 보호를 받는 청소년, 즉 ‘보호대상아동’들에게는 이 시기가 더 어렵다. 아동양육시설이나 공동생활가정, 가정위탁 등 각자의 삶터에서 함께하는 어른들이 있지만, 그럼에도 외롭고 불안한 마음은 어쩔 수 없다. 하루하루 퇴소는 다가오는데, 이 청소년들에겐 자립 정보도 하고싶은 걸 경험해 볼 기회도 충분하지 않고, 무엇보다 이러한 고민을 나눌 누군가를 찾기가 쉽지 않다.

보호대상아동의 지지망을 지원하기 위해 시작된 청소년 커뮤니티활동 지원사업

아름다운재단과 (사)여울돌 사각지대청년지원센터 봄이 협력으로 진행하고 있는 청소년 커뮤니티활동 지원사업 ‘쉼표’는 이런 청소년들이 함께 기대어 지지체계를 형성하도록 돕는 사업이다. 매년 ‘쉼표’에 참여하는 청소년들은 관심사에 따라 팀을 구성하는데, 먼저 사회로 나간 자립준비청년이 팀마다 길잡이로 함께한다. 청소년들은 일년 동안의 만남을 통해 교류하며, 팀에서 자체 기획한 커뮤니티 활동도 진행한다. 진로에 대한 고민이 많은 고등학생이 참여하기에 자신의 진로를 탐색해 볼 수 있도록 문화교육활동비도 지원받는다. 이를 통해 보호대상아동들은 또래 친구들이나 길잡이(자립준비청년)와 함께 각자의 고민과 어려움을 나누고,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걸 찾아가는 시간을 갖게 된다.

그동안 보호대상아동을 위한 지원사업은 많았지만, ‘지지체계’에 초점을 맞춘 사업은 없었다. 세상에 없던 사업을 만든 셈이다. 이렇게 시작한 ‘쉼표’ 사업, 그동안 어떤 변화가 나타났을까? 이 질문에 답해줄 두 명의 담당자를 함께 만났다. 지원사업 전반을 운영하는 (사) 여울돌 사각지대청년지원센터 ‘봄’의 박해정 팀장과 사업을 초기 기획하고 함께 협력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아름다운재단의 전서영 매니저가 한자리에 모였다.

 

자립준비청년들이 말했다. “좀 더 어렸을 때 이런 기회가 있었다면

아름다운재단 지원사업의 방향성은 ‘마중물’이다. 제도적으로 적절한 지원을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를 누구보다 먼저 찾고, 재단다운 가치와 방식을 담은 지원사업 운영을 통해 변화를 이끌어낸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변화의 마중물’이 되자는 취지이다. 청소년 커뮤니티활동 지원사업 ‘쉼표’는 이 기준에 딱 들어맞는 사업이다.

무엇보다 이 사업은 ‘보호대상아동 커뮤니티활동 지원’이라는,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에 또렷한 발자국을 내고 있다. 아름다운재단은 왜 힘든 도전에 나선 걸까? 지원사업을 기획한 전서영 매니저는 “아름다운재단이 오랫동안 자립준비청년 지원사업을 펼치면서 이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다른 단체에서도 관련 사업들이 늘었다. 이런 흐름에 맞춰 아름다운재단은 새로운 사각지대를 고민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어떤 지원사업을 새로 해보면 좋을까? 언제나 실마리는 현장에 있다. 아름다운재단 지원사업의 여러 프로그램 중에서도 ‘커뮤니티활동을 통해 지지체계를 형성하도록 하는 것’은 그간 지원사업 참여자들의 의미있는 변화를 나타냈다. 교육비나 생활비만으로는 채울 수 없는 헛헛한 마음을 이제는 든든한 친구들과 나눌 수 있게 된 것이다. 사업에 참여한 청년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퇴소 전 시설에 있을 때부터 이런 기회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쉼표’ 사업은 그 바람에 대한 응답이다. 전서영 매니저는 “시설 내에서 보호대상아동으로 있는 시기는 진로나 자립에 대한 고민도 가장 많고, 누구에게서 정보를 얻고 고민을 나눌지 몰라서 어려움을 가장 많이 겪는다”라고 전했다.

“현장 조사를 하면서 기본적인 장학금 형태의 지원이 아니라 지지체계를 형성해주는 지원사업이 없는 상황을 파악했어요. “보호대상아동이 커뮤니티활동과 같은 모임을 통해 서로 만나서 자연스레 일상과 고민을 나누고, 먼저 퇴소한 길잡이에게 자립할 때의 정보를 얻으면 좋겠다 싶더라고요.” 이른 시기 스스로 알아보고 혼자서 해나갈 일이 많은 청소년에게 퇴소 전 이러한 지원사업이 너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자신을 어디까지 드러내도 될지 조심스러운 마음, 지원의 ‘자격’을 증명해내야 한다는 강박, 사람을 믿었다가 상처받았던 아픈 기억들이 켜켜이 쌓인 당사자들의 이야기는 지원사업의 시작점이 되었다.

 

길잡이와 함께, 청소년이 스스로, 결과보다는 과정

오랜 기간 자립준비청년의 커뮤니티활동을 지원해온 아름다운재단이지만 이번 지원사업은 만만치 않다. 두 사람은 “청소년을 시설 밖으로 불러내는 것부터 너무 어렵다”고 한목소리로 강조했다. 시설 사례관리자들의 협조와 동의가 있어야 청소년들을 모집할 수 있는데, 이 첫 단계부터 고비가 찾아오는 것이다. 사례관리자들에게 ‘쉼표’ 사업의 주제와 형식이 너무 낯설기 때문이다. 시설은 특성상 ‘보호’를 우선순위에 둔다. 잘 모르는 외부 프로그램에 청소년을 내보내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니다.

어렵게 모인 청소년들인 만큼 조금이라도 더 다양한 경험을 제공해주고 싶은 게 사업 담당자의 마음이다. 청소년들에게 좀처럼 주어지지 않는 기회라는 것을 잘 알기에, 모임 시간을 알차게 채워주려고 자꾸 욕심을 부리게 되는 것이다. ‘쉼표’ 사업을 들여다보면 구석구석 담당자의 세심한 고민이 느껴진다. 바로 이 마음이 쉼표를 더 차별적인 사업, ‘마중물’이 제시하는 것처럼 ‘지원사업의 새로운 모델’로 만들고 있다.

길잡이(자립준비청년)를 통해 이어지는 경험의 연결

일단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대목은 자립준비청년들이 ‘길잡이’로 참여해 청소년들과 함께한다는 점이다. 선배 자립준비청년들이 아름다운재단 지원사업을 통해 쌓아온 경험을 자연스럽게 후배 청소년들에게 이어지는 선순환이 ‘쉼표’ 안에서 이뤄지고 있다.

길잡이는 참여자들을 연결하고 활동을 지원하는 ‘촉매’가 된다. 또한 생생한 자립 정보를 전달하는 ‘멘토’이자 실제 자립생활의 본을 보여주는 ‘롤모델’이 되기도 하다. 박해정 팀장은 “길잡이가 ‘쉼표’의 절반”이라고 표현했다. “청소년들은 사회에서 자리를 잡은 선배들을 만나 속 깊은 이야기까지 나눌 기회가 많지 않기 때문에 쉼표를 통해 함께 하는 시간은 중요한 경험이다. 이를 통해 ‘나도 퇴소하고 나서 잘 살 수 있겠구나’ 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라고 설명했다.

지원사업의 운영 방식 대부분이 ‘참여자 중심형’으로 진행되는 것도 ‘쉼표’의 특징이다. 단체가 정해놓은 프로그램을 일방적으로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청소년들이 최대한 자신의 관심사에 맞춰 스스로 활동하도록 사업을 설계한 것이다. 청소년들은 커뮤니티 활동을 하면서 자율적으로 주제도 정하고 일정도 맞춘다. ‘사진 기록자’, ‘리더’ 등 역할도 나눠 맡는다.

이런 방식은 장점이 많다. 관심사가 비슷하기에 팀원들과 더 빨리 친해질 수 있다. 함께 하고싶은 활동을 기획·운영하면서 협업, 문제해결 역량도 키울 수 있다. 무엇보다 자존감을 높일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된다. 취향과 관심사를 존중받는다는 것은 나의 개성과 욕구, 그에 따른 선택을 존중받는다는 뜻이다. 전서영 매니저는 “‘쉼표’에 참여하는 청소년들은 공동생활을 하다 보니 평소 개인의 취향을 제대로 실현하기가 어렵다”고 전했다. 그렇기에 적어도 ‘쉼표’ 안에서는 청소년들의 취향이 온전히 존중받았으면 좋겠다는 것이 담당자들의 바람이다. 이 한 번의 경험이 인생을 어떻게 바꿀지 모르기에.

‘쉼표’ 사업의 또 다른 특징은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이다. 보호대상아동이나 자립준비청년을 위한 지원사업은 눈에 보이는 결과를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 참여자를 선정할 때부터 성적이나 수상 경력을 요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미 잘하는 청소년들을 뽑아서 더 잘하게 지원하는 셈이다. 그러나 ‘쉼표’는 좀 다르다. 담당자들은 ‘쉼표’를 통해 알려주고 싶다. 충분히 실패해도 된다고.

청소년들에게 문화교육활동비를 지원하면서 박해정 팀장은 “해보고 만약에 잘 안 맞으면 다른 걸로 바꿔도 돼”라고 말해준다. 그럴 때마다 어리둥절한 반응이 돌아온다. 결과에 대한 강박 없이 그저 즐겨도 되는 이 상황이 영 의아하고 낯선 것이다. “정말 그래도 돼요? 학원을 바꿔도 돼요?”라고 묻는 청소년에게 그는 “괜찮아. 배우고 싶은걸 마음껏 해봐도 돼”라고 답한다. 조건 없는 도움과 지지가 청소년들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기 때문이다.

 

사업이 끝나도 관계는 끝나지 않는다

차별성 있는 사업은 차별성 있는 노력을 요구한다. 청소년의 마음을 섬세하게 살피는 딱 그만큼 사업의 난이도가 올라간다. 만약 자립준비청년 길잡이를 따로 섭외하고 소통하지 않고 단체에서 한꺼번에 청소년들을 인솔한다면, 혹은 저마다 다른 청소년의 취향을 살피지 않고 프로그램을 한 가지로만 구성해 진행한다면 ‘쉼표’ 사업은 훨씬 쉬워질 것이다.

담당자들도 이 어려움을 모르는 건 아니다. 박해정 팀장은 “이 사업이 유독 손이 많이 가는 건 사실이다”라고 했다. 그는 “가끔은 ‘그냥 이 정도만 할까’ 싶을 때도 있는데, 그걸 뛰어넘는 순간 청소년들이 몇 배 더 행복해지는 것 같다”고 전했다.

차별성 있는 사업은 ‘마중물’의 방향대로 차별성 있는 변화를 만든다. 그리 많지 않은 연간 몇 번의 모임만으로도 청소년들은 제법 끈끈해졌다. 비수도권에 사는 청소년들이 서울에서 열리는 행사에 오려고 새벽에 차를 타는 경우도 많다. 사업을 마치면서 청소년들은 “낯가림이 심하고 모임이 부담스러워 시간이 빨리 지나가길 바라는 마음뿐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즐겁게 시간을 보내면서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는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저 자리 채우려는 마음이 컸지만 만날 때마다 그 다음은 무엇을 할지, 어떻게 친해질지 생각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중요한 것은 사업 종료 후에도 이러한 관계가 이어진다는 점이다. 많은 청소년이 팀원이었던 또래 친구와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으며, 길잡이와도 계속 교류하고 있다. ‘쉼표’ 전체 단톡방도 대부분 나가지 않았다. 이 관계망 안에서 청소년들은 언제든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 새로운 자립 정보를 접하면 서로에게 알려줄 수 있다. 이것만으로도 ‘지지체계 형성’이라는 사업의 목적은 이미 충분히 달성된 듯하다.

쉼표 지원사업에 참여하며 ‘행복’에 대해 이야기하는 청소년들

심리적 변화도 눈에 보인다. 첫 모임부터 웃음이 터져 나왔고, 표정도 점점 밝아졌다. 청소년들은 “행복했다”, “또 오고 싶다”고 참여 소감을 말했다. “길잡이가 너무 멋있다. 나도 나중에 길잡이 하고 싶다”는 청소년도 있다. 의례 하는 ‘립서비스’가 아니다. 박해정 팀장은 “청소년들이 ‘감사’가 아니라 ‘행복’을 말하는 사업은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더 많이 고민하고 수고한 결과가 ‘행복’이라면, 담당자는 기꺼이 고생할수 있다. 그는 ‘너희만 행복하면 됐다’는 마음으로 기꺼이 번거로움을 감수한다.

더 많은 청소년에게 행복을 전하기 위해서는 각 시설 사례관리자와의 소통도 특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 아직은 낯선 주제와 방식의 사업이기에 더 열심히 신뢰를 쌓아야 앞으로도 참가자가 지속적으로 유입될 수 있다. 그래서 행사를 한번 할 때마다 교통편과 시간까지 꼼꼼하게 안내한다. 청소년들의 활동사진을 보내는 건 기본이다. 각 시설 사례관리자가 참여하는 단톡방도 만들었다. 현장의 느낌을 체감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그 마음이 제대로 통했을까. 어떤 사례관리자는 “한 번도 안 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해본 사람은 없을 것”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한 사람만의 의견이 아니다. 지난해 신청한 기관의 약 절반은 올해도 ‘쉼표’를 재신청했다. 박해정 팀장은 “사업 연령 기준에 맞는 청소년이 있는 곳은 거의 신청한 것 같다”고 전했다.

 

기부자의 지지로 이어질 변화의 마중물

두 사람에게 ‘기부자에게 하고 싶은 한마디’를 마무리 발언으로 요청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인생의 전환점은 사춘기라고 생각해요. 정말로 예민한 시기잖아요. 이때가 지나면 점점 변화를 만들기가 힘들어지죠. 그런데 ‘쉼표’에 참여하는 청소년들은 아무래도 상대적으로 제한적인 환경에서 자랄 수밖에 없습니다. 이 청소년들에게 좋은 경험을 하게 해줄 필요가 있어요. 자신의 청소년기를 돌아보면서, 기부자들이 더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길 꼭 부탁드립니다.” (박해정 팀장)

“‘쉼표’ 사업을 통한 변화를 당장 숫자로 보여드리긴 어려워요. 관계를 만드는 게 원래 시간이 걸리잖아요. 1년 만에 눈에 띄는 결과를 내는 것도 아니고요. 하지만 청소년은 한명 한명 느리지만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드는 중입니다. 더 많은 기부자님들이 함께 이들의 삶을 지지해주시면 좋겠어요.” (전서영 매니저)

내 일상과 고민을 나눌 한 사람, 쉼표를 통해 연결된 우리

많은 청소년에게 ‘어른’은 해방의 이름이다. ‘보호’에서 벗어나 자유를 만끽하며 살아갈 거라고 기대하기 때문이다. 어른이 되면 사고 싶던 물건을 마음대로 사봐야지. 어른이 되면 친구들과 밤새 놀아도 되겠지. 어른이 되면 얼른 독립해서 나만의 공간을 만들 거야. 근사한 연애도 하겠지.

시간은 참 공평해서, 어떤 청소년기를 보내든지 누구나 한해한해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된다. 그러나 그 과정은 때로는 공평하지 않기도 하다. 퇴소를 앞둔 보호대상아동에게 어른은 해방이기보다는 두려움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어른에 대해 환상을 갖기엔 이들이 마주한 현실이 너무 가파르다. 당장에 이 언덕길을 평지로 만들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함께 걷는 친구는 고된 한 걸음을 다시 내딛을 용기가 된다. 가끔 숨이 차고 힘들 때는 멈춰도 되는 ‘쉼표’가 된다. 그 작고도 거대한 변화를 위해서 아름다운재단은 열심히 마중물을 붓는다.

청소년 커뮤니티활동 지원사업 ‘쉼표’ 활동영상 보기 

글. 박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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