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1인 가구와 고독사에 관한 기사를 접했다. 1인 가구가 천만 명을 넘어선 시대, 고독사와 나홀로 죽음 등 사회 문제들이 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나 역시 1인 가구지만, 솔직히 이런 이야기들이 나에게도 해당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고독사’, ‘나홀로 죽음’ 하면 독거노인들의 쓸쓸한 죽음이나 극심한 사회적 단절 등, 특수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만 겪는 일이라고 으레 짐작했으니까.

출처: 유튜브 누가바로19길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만약 샤워하다 미끄러져서 쓰러지면 어떡하지?’, ‘만약 골든타임을 놓쳐서 죽을 고비에 처한다면?’, ‘휴대폰은 거실에 놓여있고, “시리(siri)야, 119 불러 줘”를 안간힘을 다해 외쳤는데도, 시리가 듣지 못했다면?’, ‘이렇게 마지막 순간이 찾아올 줄도 모르고, 아무 준비도 못한다면?!’ 안돼 이렇게 죽을 수는 없지. 그렇게 나의 마지막은 내가 준비해보기로 했다.
지금까지도 혼자서 씩씩하게 잘 살아왔는데, 나의 장례식도 스스로 준비해보면 어떨까? 먼저, 장례식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크게 세 가지를 확인해야 했다. 1. 장례식 예산을 확인하고 2. 장례식에 초대할 조문객을 확인한 뒤 3. 나의 장례식은 어떤 모습이면 좋을지 구체적으로 상상해보는 것이다.

출처: 유튜브 누가바로19길
장례식 예산은 생각보다 많이 필요했다. ‘그래도 한번 뿐인 장례식인데’라는 마음에 옵션을 추가해보니 3천만 원이 훌쩍 넘었다. 아, 한 사람의 죽음에 이렇게 큰 비용이 드는구나. 이전까지는 미처 알지 못했다.

출처 : 서울시 ‘고독사 위험 판단기준 체크리스트’
나의 장례식에 조문객을 초대한다는 것이 다소 독특한 발상이긴 하다. 그래도 한번쯤은 생각해보고 싶었다. 내 마지막 순간에, 기꺼이 찾아와 함께 울어주고 나를 기억해주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
평범하게 직장도 잘 다니고, 인간관계에도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우연히 서울시에서 개발한 고독사 체크리스트를 해보니 나 역시 ‘위험군’에 속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고독사, 나홀로 죽음. 이게 진짜 나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는 거구나. 그런데 정말 혼자 죽게 된다면, 만약 가족이 없는 상황이라면 누가 나의 장례를 치뤄줄까?
무연고 사망자, 이들의 장례식에는 누가 찾아올까

서울시 무연고 공영장례 절차는 ‘나눔과나눔’에서 진행하며, 조문객은 일반 시민이다. 서울시 공영장례 부고란에서 장례일정을 확인한 후, 누구나 참석하여 조문할 수 있다.
홀로 죽음을 맞이한 ‘무연고 공영장례’에 참석해보기로 했다. ‘무연고 사망자’는 연고자를 알 수 없거나 가족관계 단절로 시신 인수가 거부된 사망자를 뜻한다. 서울시 무연고 공영장례는 서울시립승화원의 화장장에 마련된 작은 빈소에서 거의 매일 진행된다. 3일장을 치르는 보통의 장례와 달리, 무연고 공영장례는 약 20분이면 끝이 난다.

무연고 사망자의 영정액자에는 사진이 들어있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루에도 여러 고인의 장례식이 간소하게 치러진다. 빈소 앞에는 그 흔한 화환도 없다. 부조금을 받는 곳도 없다. 무엇보다 영정액자에 고인의 사진이 없다. 무연고 사망자의 사진을 사망장소에서 발견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내가 조문 간 작은 빈소에는 우연히 같은 날 장례를 치르게 된, 서로 연고가 없는 두 고인의 위패가 나란히 놓여있다. 무연고자의 사망일자와 장례일자는 평균 1개월~3개월 소요된다. 이 기간동안 연고자를 찾지 못하면 무연고자로 확정되어 비슷한 시기에 사망한 이들과 공동장례를 치르게 된다.

무연고 공동장례의 경우, ‘나눔과나눔’ 활동가 또는 조문을 온 시민들이 당일 상주가 되어 운구 과정을 함께 진행한다.
상주도 연고자도 없는 무연고 사망자 장례식에서 고인의 삶과 죽음에 대해 대신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고인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온 사람들이 있다. 바로 시민들이다. 이들은 왜, 누군지도 모르는 이의 장례에 찾아와 애도를 하는 걸까?
장례를 함께 치르고 나니,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결국, 세상에 무연고로 태어나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무연고 상황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될 뿐이다. 무연고 사망자로 불리는 사람들, 어쩌면 그들의 죽음과 나는 무관하지 않다. 우리는 모두 한 사회에서 연고자로 엮여 있는 셈이니까.
매년 1천 명 이상 증가하는 무연고 사망자, 이들이 전하는 마지막 메시지

출처: 보건복지부, 편집: 유튜브 누가바로19길
전국 무연고 사망자는 해마다 1,000명 씩 증가하고 있다(2020년 3,136명, 2021년 3,603명, 2022년 4,842명, 2023년 5,414명, 2024년 5,000명 이상. 출처:보건복지부). ‘무연고 사망자’가 점점 늘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비혼 및 동거 증가로, ’법적 가족’이 부재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고인의 장례를 치러 줄 수 있는 대상군은 배우자, 자녀, 부모와 같이 법적관계만 해당된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동거인, 친척, 지인, 연인 등이 장례를 대신 치루어 줄 수는 없다. 즉, 직계가족이나 배우자가 없다면, 우리 사회는 이들이 죽음을 맞이했을 때 ‘무연고자’로 처리한다. 따라서 여러 사회적, 개인적 상황으로 ‘무연고자’로 처리되어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와 같은 문제로 새로운 형태의 가족들을 법률로써 보장하는 ‘생활동반자법’ 등,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 혈연이나 혼인 외 방법으로 구성된 새로운 가족 형태를 ‘생활동반자관계’로 묶어 법적 보호를 받도록 하는 것이 법안의 주된 내용이다.
제도적인 한계 외에도 사회적 고립, 가족관계 단절, 경제적 빈곤으로 인해 점차 무연고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매해 1천명 이상씩 증가하고 있는 무연고 사망자의 수치는 우리 사회에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적어도 ‘존엄한 마지막’조차 외면받는 사회가 되지 않기를, 무연고 사망자가 우리 사회에 전하는 마지막 메시지가 아닐까.
* 더 자세한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유튜브 <누가바로 19길>로
[무연고 공영장례 기획 시리즈 1편] 무연고 사망자? 설마 내 이야기일 줄 몰랐다
[무연고 공영장례 기획 시리즈 2편] 무연고 사망자가 전하는 마지막 이야기
[무연고 공영장례 기획 시리즈 3-1편] 죽는 거? 까짓 거 말 못할 거 없잖아
[무연고 공영장례 기획 시리즈 3-2편] 무연고 장례식에 빈 손으로 올 수는 없으니까